YUKKA SCIENCE의 과학이야기 Forums 원자, 분자, 그리고 세포에 관한 화학이야기 VII. 생명체의 기본단위로서의 세포 vs. 물질로 이루어진 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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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I. 생명체의 기본단위로서의 세포 vs. 물질로 이루어진 세포

     

     

    VII-1.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 반응: 광합성 작용의 원리

     

    일찍부터 우리는 땅에 파종을 하고 그에 적합한 조건이 충족되면 싹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실제로 어떠한 식물은 몇 년 후면 큰 나무로 성장하고, 또 어떠한 식물은 1 년 내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도 하죠. 이에 과학자들은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의 공급처인 자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2,000 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는 식물체가 ‘토양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어요. 즉, 식물 생장에 필요한 물질이 전부 토양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던 것이죠. 그의 영향을 받아 18세기 중엽까지 사람들은 토양이 식물의 영양 공급원이라 굳게 믿으며 식물이 공기 중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실험을 통해 최초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를 입증한 사람은 네델란드의 판 헬몬트(van Helmond, 1580년~1644년)였어요. 1627년 그는 버드나무 분재의 무게를 재는 실험으로 버드나무가 자란 후에도 화분 속 흙의 무게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에 헬몬트는 물이 나무를 자라게 하는 한 원인이라 생각했고 식물의 무게는 흙이 아닌 물에서 비롯된다는 추론을 내놓았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공기 중의 물질이 유기물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죠.

    1727년이 되어서야 영국의 식물학자 헤일스(Hales, 1677년~1761년)에 의해 식물이 생장할 때 공기를 주요 영양분으로 한다는 관점이 제시되었어요. 이러한 그의 관점을 바탕으로 녹색 식물이 공기 중에서 영양분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사람은 바로 프리스틀리였어요. 1771년 프리스틀리는 식물이 촛불연소로 탁해진 공기를 정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프리스틀리는 그 후 식물이 산소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죠. 그러나 그 역시 빛이 생물의 생장 과정에 일으키는 중요한 작용을 깨닫지는 못했어요. 그럼에도 현재 사람들이 1771년을 광학성 작용이 발견된 해로 지정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실험이 훗날 광합성 작용의 원리를 발견하는데 길을 열어주며 광화학 연구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 후 1779년에 네델란드의 과학자 잉겐호우스(Ingenhousz, 1730년~1799년)가 식물의 녹색 부분이 빛 아래 있어야 공기 정화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1804년 스위스의 드 소쉬르(de Saussure, 1767년~1845년)는 정량 연구를 통해 이산화탄소와 물이 식물 생장의 주요 원료임을 증명했어요. 이는 버드나무의 생장을 돕는 것이 물이라고 말했던 헬몬트의 추론을 입증하는 결과였을 뿐 아니라 광합성 작용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결과이기도 했죠.

    1845년에 독일의 의사 마이어(Meyer, 1814년~1878년)는 식물이 태양을 화학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 후 1864년 독일의 작스(Sachs, 1832년~1897년)는 광합성 작용으로 산소 뿐 아니라 유기물인 녹말도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배출하며, 이산화탄소와 물을 합성해 유기물을 만든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어요. 광합성 반응식 역시 이 시기에 탄생했죠. 1880년 독일의 학자 엥겔만(Engelmann, 1843년~1909년)은 실험을 통해 광합성 작용 과정에서 산소를 만들어 내는 부분이 엽록소임을 발견해 엽록체가 광합성 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결론을 도출해냈어요.

    지난 200여 년 동안 헬몬트에서 작스, 엥겔만에 이르는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사람들은 드디어 광합성 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조건, 원료, 그리고 광합성에 의한 산물 등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광합성 작용에 대한 지식과 광합성 반응식의 확립은 광합성이라는 이 복잡한 반응 메커니즘에 대해 심층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어요.

    흥미롭게도, 1930년 대에 미국의 과학자 루벤(Ruben, 1913년~1943년)과 카멘(Kamen, 1913년~2002년)이 ‘동위원소’를 이용해 ‘광합성 작용 중에 배출되는 산소가 물에서 비롯되는가, 이산화탄소에서 비롯되는가’라는 문제를 연구해 산소는 100% 물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VII-2.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생명의 기원

     

    생명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느냐는 오늘날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남아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과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문제이기도 하죠.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가설로는 종교에 기반을 둔 천지창조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 그리고 현재 유행하고 있는 화학적 진화설과 우주의 진화에 따른 생물체의 진화설 등이 있어요.

    천지창조설은 과학이 확립되기 전 사람들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가설로, 훗날 종교적으로 이용되면서 하나의 신앙이 되었답니다. 물론 이 학설은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었어요.

    자연발생설은 19세기 초 대대적으로 유행했던 이론으로 ‘자생론’ 또는 ‘자연기원론’이라도 불렸어요. 자연발생설은 ‘무’에서 ‘유’가 탄생할 수 있다고 보는 이론이에요. 옛날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썩은 풀에서는 개똥벌레가 나오고, 썩은 고기에서는 구더기가 생기니 생물의 탄생과정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이들이 생겨난 것이라고 오해했던 것이죠. 고대 그리스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렇게 생각했고, 그의 영향을 받아 이 학설은 진리로 받아들여졌어요. 중세기에도 나뭇잎이 물속으로 떨어지면 물고기가 되고, 땅으로 떨어지면 새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또 종교적인 힘이 아무리 크고 무섭다 해도 진리를 향한 인간의 탐구정신을 막을 수는 없었어요. 18세기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스팔란차니(Spallanzani, 1729년~1799년)의 실험은 ‘부패한 고기에서 생기는 미생물은 공기에서 비롯된 것이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고, 그 후 ‘자연발생설’은 과학계의 질타를 받게 되었어요. 1860년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파스퇴르(Pasteur, 1822년~1895년)는 간단하지만 정확한 실험으로 미생물의 존재를 입증했고, 이로써 그는 자연발생설을 철저하게 부정했어요.

    그리고 이 시기에 다윈(Darwin, 1809년~1882년)의 <종의 기원>이라는 저서가 세상에 선보였는데, 생물과학에 유래 없는 변화를 몰고 온 이 책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도 비교적 합리적인 해석, 즉 현대의 진화론인 화학적 진화론을 제시해 주었어요. 오늘날까지 과학자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이 가설은 지구가 형성된 이후 온도가 점차 낮아졌는데, 그 긴 세월동안 미생물이 극히 복잡한 화학과정을 거쳐 한 단계 한 단계 진화한 것이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1952년 미국의 학자 밀러(Miller, 1930년~2007년)가 처음으로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원시지구에서 생명탄생의 가능성을 증명했어요. 그의 실험은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실험이었어요. 다른 전문가로부터 40억 년 전의 지구에는 암모니아 가스와 메테인 가스 등으로 형성된 거대한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이 구름 안쪽에는 번개가 번번히 발생하고 바깥쪽은 항상 태양의 자외선이 비췄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된 밀러가 플라스크 안을 ‘최초의 지구’와 같은 상태로 만들었던 것이죠. 그는 태고와 같은 상태의 기체를 플라스크 안에 채우고 일주일 후 다시 번개와 햇빛의 역할을 대신해서 지속적으로 전기를 방전시켰어요. 그 결과 실험을 마쳤을 때 밀러는 플라스크 내부에 갈색의 물질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밀러는 이를 분석해서 물질의 대부분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유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마치 생명체를 구성하는 분자의 몇몇 요소가 태고의 지구를 둘러싼 기체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듯한 결과였죠. 이와 같이 밀러는 시뮬레이션 실험 방법을 고안해 냄으로써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실험과학으로 만들었어요. 밀러의 시뮬레이션 실험을 기반으로 많은 학자들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분자의 요소가 생명체의 존재 없이도 합성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유기물들이 결합되어 단백질과 기타 다당류, 고분자 지방류로 진화하고, 이로써 생명을 만들어 낸다고 추론하게 된 것이죠.

    1960년대 성간 분자의 발견으로 또 다시 새로운 생명기원설이 제시되었는데 바로 우주의 진화에 따른 가설이었어요. 19세기 서양에서 유행했던 ‘생명은 우주가 생겼을 때부터 존재했다’는 학설에서 발전한 이 가설은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 예를 들어 효소, 단백질, 유전 인자 등이 형성되려면 수억 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지구가 탄생하고 2년 후부터 생명이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지구가 탄생한 후 우주에서 이 물질들이 지구로 옮겨 왔다는 것이었죠. 성간 분자의 발견은 때마침 이 가설을 뒷받침해 주었답니다.

    오늘날까지도 과학자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수수께끼를 완전히 풀지 못하고 있어요. 무기물에서 유기물까지, 그리고 다시 유기 화합물에서 유기 생명체까지 수많은 우연이 존재하는 이 과정을 철저히 파헤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어요. 생명은 어쩌면 광활한 우주 가운데 지구라는 별에만 생긴 것일지도 모르지만, 또 어쩌면 은하 밖의 어떤 항성계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일부 생명체들이 이미 지구를 다녀갔을지도 모를 일이죠.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외계인처럼 말이에요.

     

     

    VII-3. 생명기원의 활화석: 미생물

     

    인류의 오랜 생존 역사 중 일부분은 각종 질병에 맞선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페스트, 디프테리아, 콜레라, 키푸스, 이질, 유행성 감기, 천연두 등과 같은 전염병이 끊임없이 생겨나 인간을 위협하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기도 했죠. 강력한 전염병이 돌면 한 번에 수 천,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이렇게 무서운 살인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어디에 숨어있었던 걸까요? 전 세계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답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우리의 몸 속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분포해 있는 미생물이었어요.

    미생물은 이미 40억 년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었다고 해요. 과학자들은 이들이 바닷물 속의 복잡한 유기물 또는 원시 육지를 돌고 있는 거대한 구름무리로부터 형성되었으며.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하면서 지구상에 다양한 종류의 생명을 탄생시켰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때문에 미생물은 모든 생명의 시조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죠.

    미생물은 그 크기가 너무 작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어요. 그래서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미생물의 존재를 알 수 없었어요. 현미경이 발명된 후 미생물의 신비가 하나 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던 것이죠.

    가장 먼저 그들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은 문지기였다가 훗날 생물학자가 된 레이우엔훅(Leeuwenhoek, 1632년~1723년)이었는데, 그가 미생물을 발견한 시기는 1674년이었어요.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직접 만든 확대율이 270배에 달하는 현미경으로 물방울을 관찰하다가 물 한 방울 속에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무수한 비밀들이 숨어있음을 발견했어요. 물 속에 아주 자그마한 무언가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죠. 그는 이들을 ‘아주 미미한 동물’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크기를 측정했어요. 보다 세부적인 관찰을 통해 레이우엔훅은 수많은 하등 동물과 곤충들의 생활사를 발견했어요. 그들은 모래나 진흙 또는 이슬 속에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알에서 부화되어, 바람을 따라 이동하기도 했어요.

    레이우엔훅은 서신을 통해 영국왕립학회의 <왕립학회철학회보>에 자신의 발견들을 발표했어요. 1680년에 연구 성과를 인정받은 그는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어요.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이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이우엔훅은 기초지식이 부족해서 자신의 발견을 이론으로는 발전시키지 못했어요. 거기다 현미경 제작 기술도 제자리 걸음으로 발전하지 못 하면서,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00여 년동안 미생물 연구는 침체기에 빠져 빛을 보지 못했어요.

    미생물학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생물학자 파스퇴르와 독일 생물학자 코흐(Koch, 1843년~1910년, 190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 등의 노력에 힘입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답니다. 그들은 특히 미생물의 순종을 분리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고, 더 나아가 미생물 연구에 필요한 일련의 방법들을 확립함으로써 미생물학 확립에 초석을 마련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세균학, 면역학, 토양미생물학 등 미생물학에서 파생된 학과들이 잇달아 생겨났어요. 이렇게 인간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냈음은 물론 더 나아가 그들을 인간을 위해 이용하기도 한답니다.

     

     

    VII-4. 갈바니의 개구리: 전지의 발견

     

    1780년의 어느 날,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갈바니(Galvani, 1737년~1798년)는 실험실 테이블에서 죽은 개구리를 해부하고 있었는데, 그의 손안에 있던 개구리가 문득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관찰했는데, 그는 이 이상한 경련이 전기로 인해 생기는 것이 틀림없다고 추정했어요. 그렇다면 그 전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의 실험실에는 ‘라이덴 병’도 기전기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죽은 동물이나 살아 있는 동물이나 모두 특별한 동물 전기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자신이 개구리의 신경에 닿았을 때 그 전기가 방전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볼타(Volta, 1745년~1827년)는 이것이 동물 전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갈바니의 실험 결과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고 두 종류의 금속과 한 장의 종이가 작은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다면 많은 금속이나 종이가 없어도 충분히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볼타는 최초로 전지를 만들 수 있었어요. 그가 만든 최초의 전지는, 아연판과 동판 사이에 물에 적신 종이나 헝겊을 끼운 것을 몇 번 겹쳐 놓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밑의 아연판과 위쪽의 동판을 연결하자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 이래로 과학자들은 전신기, 전화기, 라디오, 텔레비전 등과 같이 전기에 의존하고 있는 근대의 기계를 속속 만들어 내고 있어요.

    1800년, 볼타가 최초의 전지를 만든 바로 그 해에, 영국의 두 화학자 니콜슨(Nicholson, 1753년~1815년)과 칼리슬(Carlisle, 1768년~1840년)은 주목할 말한 전지의 용도를 발견했어요. 두 사람은 연속적으로 전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와 산소를 분리, 추출하였던 것이죠. 이것은 캐번디시(Cavendish, 1731년~1810년)가 산소와 수소를 합성해서 물을 만들었던 것과 좋은 대조가 되는 것이었어요. 이들은 전지에서 따온 2개의 전선을 소금물로 채워진 병에 서서히 집어넣었는데, 놀랍게도 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한쪽 전선에서 산소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고, 다른 쪽 전선에서는 수소가 거품을 일으키는 것을 관찰했어요. 바로 물이 전류에 의해 두 가지 물질로 나누어진 것이죠. 라부아지에는 물을 분석하기 위해 뜨겁게 달아오른 철판을 이용했는데, 이들의 발견으로 인해 원소를 분리하는 데에는 이제 약간의 전류만 있으면 충분하게 되었어요. ‘전기 분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방법으로, 화학은 강력한 탐구에 새롭게 도전할 수 있게 되었어요. 18세기의 과학자들은 열의 성질과 화학 변화, 그리고 전기를 연구했는데, 이제 다음 100년간, 세계는 그것들에 감추어진 풍부한 힘이 해방되는 것을 보게 된답니다.

     

     

    VII-5. 우유 짜는 여자 이야기: 백신의 발견

     

    19세기 이전에 유럽과 아시아,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병 중 하나는 천연두였어요. 이 전염병으로 인해서 수천,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 갔어요. 프랑스의 루이 15세도 천연두로 죽었으며, 미국의 워싱턴 대통령도 얼굴에 천연두 자국을 갖고 있었죠. 이 병의 치료법, 혹은 예방법은 당시에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 병에 대해서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었어요. 그것은 이 병에 걸려도 죽지 않는다면 이 병에 대해 다시는 앓지 않는 ‘면역’이 된다는 것이었죠.

    영국의 의사인 제너(Jenner, 1749년~1823년)는 이 면역에 주목하면서, 병에 걸리지 않고 그 병에 대해 면역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영국의 대사 부인 몬태규(Montague)가 터키에서 귀국했을 때, 제너는 그녀로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녀에 의하면, 터키인 중에는 가벼운 천연두에 걸린 사람으로부터 일부러 전염되거나 환자의 병균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가볍게 앓고 병의 증세가 없어진다는 것이었어요. 몬태규 부인은 천연두에 대해 이와 같은 예방 접종을 해야만 된다는 생각을 확고히 가지고 있었죠. 그렇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이런 접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어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제너는 고향 글로스터셔에서 전해 내려오는 소젖을 짜는 여자는 천연두에 결코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그래서, 그는 그 이야기에 대해 조사해 보았는데 정말로 목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중에 얼굴에 천연두 자국이 있는 여자를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와 함께 제너는 목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들이 우유를 짜는 암소에서 옮아 우두라는 병이 걸렸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우두는 그렇게 큰 병이 아니어서 양손에 작은 발진이 생기는 정도이고, 그나마도 곧 사라져 버리는 병이에요. 제너는 ‘우두에 접촉했던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그는 매우 위험한 실험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796년에 그는 그와 같은 큰 결심을 하고, 우두에 걸린 채 젖을 짜던 여자의 손에서 분비액을 추출하여 한 소년의 팔에 그 분비액을 발랐어요. 2개월 후, 소년에게 진짜 천연두 병균을 접종하는 실험의 중대한 국면이 다가왔어요. 그는 소년에게 재차 예방 접종을 시행하였고, 그 결과 다행히도 소년은 병에 걸리지 않았어요. 바로 소년은 천연두에 대해 면역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제너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같은 실험을 반복해 보았고, 그들도 역시 면역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오늘날 천연두는 제너의 덕택으로 멸종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하지만, 제너가 보여준 결과는 하나의 병을 멸종시키는 이상의 일을 한 것이랍니다. 그것은 의사들에게, 많은 무서운 병에 대한 면역성을 만드는 데 인체의 방어 기능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죠. 제너의 천연두에 대한 종두법은 결핵이나 장티푸스, 황열, 소아마비 같은 병에 대한 백신 요법의 발달을 촉진시키게 된답니다.

     

     

    VII-6. 프랑스 와인산업을 살린 발견: 파스퇴르의 세균(학)설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와인 생산량은 유럽 전체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이었어요. 하지만 양조업자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당시 대다수의 양조장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술을 빚었는데, 이 방식에는 ‘효모’를 이용해 포도즙을 ‘발효’시켜 주정으로 바꾸는 중요한 단계가 있었어요. 문제는 바로 이 발효 과정 중에 술이 신맛으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술통 속의 포도즙이 향과 맛을 겸비한 훌륭한 술이 될지 아니면 쏟아버릴 수 밖에 없는 신물이 될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양조업자들은 이러한 고민이 해결되길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었죠.

    1857년에 한 양조장의 주인이 어떻게 해서든 포도주의 산화되는 원인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화학자 파스퇴르를 초청했어요. 파스퇴르는 먼저 효모에 문제의 원인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죠.

    몇 달 동안 효모와 발효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 끝에 그는 효모의 작은 과립, 즉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효모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이 균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증식해 양분을 섭취하고 운동을 하면서 점점 몸집을 불려나갔어요. 포도즙에 효모를 첨가하면 이 균들이 즙에 함유된 양분을 먹고 성장하여 끊임없이 번식하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주정이 생겨나는 것이죠. 때문에 주정은 효모균의 배설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효모의 작용 원리를 파악한 파스퇴르는 다시 어떻게 하면 좋은 술이 되고, 또 어떻게 하면 시큼하기만 한 술이 되는지 분석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좋은 술 속의 효모균은 원형이지만 시큼한 술 속에 든 균은 가늘고 긴 모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죠. 그는 이 가늘고 긴 세균이 효모균과는 다른 균이며 주정이 아닌 신 맛의 물질을 만들어낸다고 밝혔어요. 그 후 파스퇴르가 찾아낸 해결 방법은 간단했어요. 즉 가늘고 긴 세균을 제거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효모를 넣은 포도즙을 섭씨 50 oC까지 가열하기만 하면 포도주 속의 불청객인 세균을 없앨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 방법이 바로 현재 우리가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저온살균법’이고, 이 발견을 계기로 파스퇴르는 ‘와인산업의 구세주’라 칭송받게 된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파스퇴르는 효모에 대해 연구하면서 미생물이 과즙을 발효시키거나 포도주를 산화하는 역할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1858년 그는 ‘세균병인설’(또는 세균학설)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어요. 세균병인설이란 미생물이 포도주에 위해가 된다면 인체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원인이 미생물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파스퇴르의 세균병인설을 뒷받침하는 예는 아주 많았어요. 예를 들어 당시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의사인 제멜바이스(Semmelweis, 1818년~1865년)가 언급한 손 씻기 문제는 세균학으로 쉽게 설명되었죠. 실습생이 손으로 시체를 만져 시체의 세균에 감염됐고, 세균은 실습생의 손을 통해 다시 임산부에게 옮겨가 결국 임산부를 사망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에요. 실습생이 염소수로 손을 씻었다면 세균은 죽고 임산부는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그마한 세균이 이처럼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며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하지 않더라도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이 많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지 않았어요.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공기 중에 떠다닌다는 주장을 펼치며 자신의 학설을 점차 보완하였고, 그 후 끊임없는 노력과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파스퇴르의 세균병인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이로써 파스퇴르의 명성과 그의 세균병인설도 프랑스를 넘어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지게 된답니다.

    당시 파스퇴르의 학설을 100% 수용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중 한 명이 바로 영국의 외과의사 리스터(Lister, 1827년~1912년)였는데, 그는 석탄산 수용액을 이용해 환자의 상처를 소독하면 환자의 생존율이 뚜렷하게 상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또 다른 한 명은 세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인 코흐였어요. 그는 뜨거운 물로 수술용 기구를 소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 방법이 바로 오늘날의 ‘고온살균법’(또는 코흐 살균법)이랍니다. 코흐는 1890년대에 콜레라와 결핵을 일으키는 병원균을 발견함으로써 세균병인설에 힘을 실어 주었어요.

     

     

    VII-7. 생물체의 엔지니어: 효소 이론

     

    인체 내부에서는 복잡한 화학 반응이 쉬지 않고 일어난답니다. 사람의 체온은 보통 37 oC인데, 이 정도의 온도에서는 화학 반응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데, 인체 내부의 화학 반응이 느리게 진행되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어요. 그러면 어떤 이유로 인체 내부에서 화학 반응 속도가 떨어지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이런 반응들에 대한 촉매제인 효소가 있기 때문이에요. 효소는 생물체가 생성해내는 단백질 또는 핵산으로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생물체 자체의 엔지니어’라고 불린답니다. II 부분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효소의 놀라운 능력 때문에 효소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요.

    효소는 생명체 내에서 이렇게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를 발견하고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단일한 물질인 것으로 생각되는 효소의 발견 원류를 살펴보면, 1785년에 이탈리아 스팔란차니(Spallanzani, 1729년~1799년)가 동물의 위액을 채취하여 고기에 넣으면 고기가 녹는데 이때 고기를 소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물질을 ‘펩신’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단백질을 분해하는 작용을 하는 최초로 발견된 효소인 것이죠. 스팔란차니는 가열 처리된 펩신은 고기를 소화시키는 작용이 없어진다는 사실도 발견하였어요. 그 후 스팔란차니의 발견에 주목한 독일의 생물학자 슈반(Schwann, 1810년~1882년)은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1836년에 그는 침전 방식을 이용해서 위액에서 얻은 소화 능력이 있는 하얀색 분말을 ‘위 단백 효소’라고 불렀는데, 이는 인류가 처음으로 순수 체내에서 채취한 정제된 형태의 효소였고, 이로써 효소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었죠.

    1897년에 독일 화학자 부흐너(Buchner, 1860년~1917년, 1907년 노벨 화학상 수상)는 효모균을 잘게 조각내 얻은 액이 살아있는 효모와 같이 발효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살아있는 효모 자체가 아니라 효모 속에 함유된 각종 효소가 탄수화물을 발효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쾌거였죠. 1913년에는 미카엘리스(Michaelis, 1875년~1949년, )와 멘텐(Menten, 1879년~1960년)이 제시한 ‘미하일리스-멘텐의 식’은 물리화학을 이용해서 효소반응에 의해 촉진되는 동역학 원리를 찾아 효소에 대한 정량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어요.

    그리고 1926년, 미국의 생물화학자 섬너(Sumner, 1887년~1946년, 1946년 노벨 화학상 수상))가 작두콩에서 우레아제의 결정을 추출한 뒤 실험을 통해서 처음으로 우레아제가 단백질의 일종임을 증명했어요. 이후 과학자들은 여러 효소를 추출해내는 한편 화학 실험을 통해 효소가 촉매 작용을 하는 단백질임을 증명함으로써 효소의 촉매 작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어요.

    1930년대에는 여러 효소의 단백질 결정들이 성공적으로 추출되었어요.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효소들은 각각 독특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효소 연구의 새로운 영역들이 생겨났죠. 1982년에는 미국의 과학자 체크(Cech, 1947년~ , 1989년 노벨 화학상 수상)와 캐나다의 생물학자 올트만(Altman, 1939년~ , 1989년 노벨 화학상 수상)이 ‘RNA’ 역시 생명체 내에서 촉매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후 과학자들은 잇따라 촉매 활성을 보이는 RNA를 추가적으로 발견했어요. 이러한 사실은 RNA가 초기 생물 활성제일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했어요.

    이와 같이, 과학이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효소의 성질과 작용에 대한 비밀도 대부분 밝혀졌는데, 과학계는 살아있는 세포는 효소를 생성하며 효소는 촉매작용을 하는 특이성을 가지는 분자이며, 여기에는 단백질과 핵산이 포함된다고 보고 있어요. 생물의 신진대사에 나타나는 모든 화학 반응은 특이성을 가진 효소의 촉매 작용에 의한 것이죠. 효소의 고효율, 특이성, 다양성 그리고 반응 조건은 세포 내의 복잡한 물질 대사 과정을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요. 인체의 유전적 결함이나 기타 원인으로 효소의 활성에 이상이 발생하면 병이 생길 수 있죠. 이 때문에 효소의 발견과 관련 이론 연구는 생명과학의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현재 효소는 공업 생산 분야에도 활용되고 있답니다. 효소는 환경에 아무런 위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효소를 사용하면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후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어요.

     

     

    VII-8.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유래된다: 세포설

     

    바이러스나 비로이드(viroid) 등과 같은 비세포 생명체를 제외한 기타 생명 유기체는 모두 구조와 기능 단위가 세포로 이루어져 있어요. 세포는 막으로 둘러쌓인 세포핵(혹은 핵상체)의 원형질로 구성된 것으로,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의 기본단위이자 생명 활동의 기본단위인 것이죠.

    분열을 통해 번식하는 세포는 생명체의 개체 발생과 계통 발생의 기반이 된답니다. 하나의 세포가 독립된 생명 단위를 구성하거나 여러 개의 세포가 세포 군체 또는 조직, 기관, 신체를 구성해요. 이 뿐만 아니라 세포는 유전의 기본 단위이기도 하죠.

    인류가 최초로 살아있는 완전한 세포를 관찰한 것은, VII-3 부분에서 언급되었던 레이우엔훅에 의해서 였어요. 그는 1673년에 그의 관찰 결과를 영국 왕립협회에 보고하였는데, 덕분에 레이우엔훅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죠. 현미경의 제작기술이 향상되면서 세포에 대한 연구는 갈수록 심화되었는데, 이로써 생물은 세포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수많은 연구결과가 보고되었죠. 1809년에 프랑스의 저명한 박물학자 라마르크(Lamarck, 1744년~1829년)는 만약 생물체의 구성성분이 세포성 조직 또는 세포성 조직이 형성한 무엇이 아니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어요.

    1838년 독일인 슐라이덴(Schleiden, 1804년~1881년)은 식물세포에 대해 연구한 끝에 식물의 기원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세포는 식물체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라고 역설했어요. 한편, 바로 앞 VII-7 부분에서 언급되었던 슈반은 동물 세포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는 닭, 개구리, 포유류의 난황 양 등을 비교하여 <동•식물의 구조와 성장 일치에 관한 미세 연구>를 발표했고, 이 논문에서 세포구조는 모든 동물체가 공유하는 구조적 특징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슈반은 더 나아가 동물과 식물의 구조적 통일성을 지적했어요. 그는 동•식물이 모두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 구조는 생물체의 공동된 특징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또한 그는 최초로 ‘세포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과학자에요.

    이들 두 학자는 연구를 통해 세포와 세포의 기능을 비교적 정확하게 정의했고, 세포설의 기본 원칙을 확립했어요. 그러나 그들이 잘못된 개념을 제시한 것도 있는데, 새로운 세포가 기존의 세포핵과 비세포 물질로부터 생성되어 기존 세포의 붕괴로 완성된다고 했어요. 훗날 수많은 연구자들이 관찰한 결과 세포는 오로지 기존 세포의 분열을 통해서만 생성된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죠. 1858년에 독일의 병리학자 피르호(Virchow, 1821년~1902년)는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어요. 생물 활동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본질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헤친 이 주장은 일반적으로 세포설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심지어 이 주장이 제시되고서야 비로소 세포설이 완성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세포설의 정립과 생명체에 있어서 세포의 중요성은 물리•화학 분야에서 원자가 갖는 의미만큼이나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세포설은 생물계 전체가 구조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진화적으로 공통의 기원을 가졌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죠. 이 학설의 정립은 생물학의 발전을 촉진하는 한편 ‘변증유물론’에 중요한 자연과학적 근거를 제공해 주었어요. 세포설은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19세기의 3대 발견’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답니다.

     

     

    VII-9. 완두 교배 실험의 발견: 유전법칙

     

    멘델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였어요. 그는 학자를 꿈꿨지만 학업 성적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대학 진학 대신 신학을 공부해 수도사가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멘델에게 행운이 따랐는지 수도원에서 그에게 훌륭한 실험 기회를 제공해 주었어요. 그가 몸담고 있던 수도원은 꽃을 재배해서 판매한 수익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고, 멘델은 농가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접하며 자란 덕분에 식물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죠.

    한편, 당시 원예가들 사이에서는 대부분의 식물이 바람에 실려 날아오거나 곤충이 옮긴 꽃가루로 수정되며 솔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붙여주면 인공수분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기 많은 원예가들은 가끔씩 화원에 핀 신기한 색깔의 꽃이 있을 때 그 꽃의 꽃가루를 다른 종의 꽃 암술에 옮기는 이 방법으로 종자를 만들어 새로운 품종의 꽃을 만들어 냈기도 했어요. 이를 통해서 원예가들은 부모 세대의 꽃 색깔이 자식 세대로 ‘대물림’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당시 학자들은 이 ‘대물림’ 현상에 주목했어요. 그들은 더욱 신기한 색깔의 꽃을 재배하기 위해 형질의 유전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멘델 역시 이 현상에 주목했는데, 그는 부모 세대의 형질이 자식 세대에 유전될 때 유전의 방식을 결정하는 자연법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생각을 증명하는데 당시로서는 식물이 최고의 연구 대상이었죠. 1854년에 멘델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증명해 보리라 마음먹고, 신종 완두를 재배하기 위해 완두 수술의 꽃가루를 다른 완두의 암술에 옮긴 후 종자가 형성되기를 기다렸다가 정원에 이 씨를 심었어요.

    그 후 멘델은 다시 이 완두의 다음 세대를 교배하는 방법으로 더 많은 자손 세대 완두를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멘델은 매우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어요. 바로 키 큰 완두와 키 작은 완두를 교배했을 때는 다음 세대가 모두 키 큰 완두로 자란 반면에 그 손자 세대에 가서는 키 작은 완두가 다시 나타났으며, 신기하게도 이 때 키 작은 완두와 키 큰 완두의 비율이 1대 3인 것이었어요. 열매의 모양과 색깔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로써 그는 완두콩의 형질 유전이 상당히 복잡한 방식으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멘델의 완두 연구는 10년간 지속됐어요. 장기간의 노력 끝에 그는 부모 세대의 형질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자녀 세대에 유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즉, 줄기의 길이나 꽃과 과일의 색깔이 모두 우연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그리고 자녀 세대에서 다시 손자 세대로 이러지는 특별한 규칙에 의해 유전된 것이었죠. 1865년에 그는 <식물 교배 실험>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유전인자(현대유전학에서는 유전자라고 불러요.)라는 기본단위에 의해 유전 현상이 나타난다는 논점을 내세웠어요. 또한, 유전학의 두 가지 기본 법칙인 ‘분리의 법칙’과 ‘독립의 법칙’을 제시했어요. 이것이 바로 ‘멘델의 법칙’이에요. 이 중요한 두 법칙이 발견되면서 유전학의 탄생과 발전에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 주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논문은 당시의 과학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현지의 잡지에 기재되어 당시 유럽학자들은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의 유전법칙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빛을 보기 시작한답니다.

    멘델은 서로 섞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의해서 부모 세대의 형질이 다음 세대에 똑같이 전달된다는 사실을 증명했어요. 즉, 식물의 형질은 모종의 ‘인자’에 의해 유전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죠(멘델은 이 ‘인자’가 입자류의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해서 유전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과학이 탄생했어요.

     

     

    VII-10. 신과의 싸움: 인류의 탄생

     

    다윈의 <종의 기원>은 출판되자마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어요. 논쟁의 쟁점은 단 하나였는데, 바로 수많은 종이 공통된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사자와 호랑이, 고양이는 공통점이 아주 많은데, 다윈은 이들이 이처럼 유사한 이유가 조상이 같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던 것이죠. 바로 상고시대에 이미 멸종된 것으로 생각되는 ‘원시고양이’가 그들의 조상이라는 것이에요. 다윈은 다른 동식물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기술했어요. 이러한 ‘진화’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이 사실을 원숭이와 같은 조상을 가질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어요. 인류가 원숭이와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을까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제쳐두고,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판단해 보아도 이는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죠. 이처럼 논리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감정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기 쉬운 이 문제는 인간의 고정관념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때문에 한 순간에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사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류 역시 하나의 생물 종에서 진화했다고는 언급하지 않았어요. 진작부터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이었기는 했지만,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종의 기원> 속에 밝힌 관점만으로도 사람들이 쉽게 인류와 원숭이 가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책을 읽은 사람들은 추론해낼 것이라는 예상은 다윈도 했을 거예요. 이는 1871년에 출판한 <인류의 기원과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에서도 알 수 있어요. 다윈은 이 책을 통해 생물계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인간과 고등동물의 관계 및 차이를 기술했는데, 인류가 동물에서 비롯됐으며, 인류와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이 바로 인류라는 주장이 이 책에 기술되어 있어요.

    다윈은 원래 인류의 기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었다고 해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다윈은 사람이 원숭이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 원시인은 오랑우탄이었다고 말한다.’라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였죠. 책 속의 표현에 따르면, 몇백만 년 전 지구 상엔 원숭이도 사람도 아닌 종이 존재했는데 이 원시종의 자손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작은 새와 같이 두 가지의 종으로 즉 유인원과 인간으로 점차 진화했다. 즉, 유인원으로 진화한 종이 나중에 호모 사피엔스(인류의 학명)가 되었다는 것이죠.

    인류의 진화에 관한 다윈의 관점은 그 후 고고학 발굴을 통해 점차 입증되었어요. 그 결과 현재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완고하게 이러한 관점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다윈의 관점이 상당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최초의 인골 화석은 1856년, 독일인에 의해서 발견되었어요.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산골짜기에서 출토된 이 인골 화석은 일반인의 뼈대에 비해 훨씬 두껍고, 두개골의 모습 역시 현대인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 후의 고생물학자들(지질시대의 생물 또는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뜻해요.) 역시 멸종한 다른 인종의 유골을 발견했어요. 덕분에 현재 우리는 인간이 오늘날부터 최소 5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유인원과 비슷한 종에서 분화되어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추측된답니다.

     

     

    VII-11. 진정한 만병통치약: 호르몬

     

    호르몬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아주 높은 생물활성을 보이는 특수한 화학물질로 신진대사, 성장, 발육, 면역, 생식 등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요. 생물체 내의 내분비샘이나 내분비세포가 분비하는 호르몬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그 중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는 인슐린, 아드레날린, 티록신, 성장호르몬 등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성장호르몬은 키를 크게 하는 호르몬으로 볼 수 있는데 생체 내에 그 양이 너무 많으면 거인증에 걸리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적으면 난쟁이가 되기도 해요. 한편 티록신이라는 호르몬은 너무 많으면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걸리고 너무 적으면 갑상선종이 생겨요. 인슐린은 체내의 혈당 농도를 낮춰준답니다. 이와 같이, 호르몬은 인체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그 종류도 다양하지만,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사람의 경우조차도 그 양이 수백 나노그램(1억분의 1그램)이 안 될 정도로 체내 함량이 워낙 적어서 쉽게 발견할 수 없었어요.

    호르몬이 발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기록에 의하면 일찍이 11세기에 고대 중국의 한 의학자가 사포닌(saponin)을 이용해서 사람의 오줌에서 상당히 순도가 높은 성호르몬을 추출했다고 해요. 이는 스테린(sterin)류 물질로 오늘날의 ‘비아그라’ 또는 ‘최음제’ 종류로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당시에 이런 ‘성호르몬’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실제로 그러한 원시적인 경험을 응용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과학적 발견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고대의 의사들이 호르몬류 약물의 대체품을 발견했고, 19세기 후반엔 몇몇 생물학자들에 의해서 체내의 일부 기관이 분비해 내는 특수한 물질들이 신기한 기능을 많이 가진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인류가 진정으로 호르몬을 이해하게 된 것은 20세기초의 일이었어요.

    1888년에 ‘조건반사’를 발견한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Pavlov, 1849년~1936년, 1904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는 개를 이용해 실험을 하다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어요. 개의 십이지장에 염산을 투입했더니 개의 췌액 분비가 촉진되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는 이 현상을 단순히 신경반사에 의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이후 이와 유사한 현상을 발견한 생물학자들이 이러한 현상이 신경반사라고 설명하는 파블로프의 이론에 의심을 품었지만 파블로프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고 신경반사라는 틀을 깨지는 못했어요.

    역사적으로 혁신에는 자유로운 생각과 젊음,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던 경우가 많은데, 영국의 젊은 생리학자 스탈링(Starling, 1866년~1927년)의 세크레틴(secretin) 발견도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스탈링도 췌액 분비에 관한 실험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파블로프의 해석이 탐탁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 한 가지 혁신적인 실험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사실 그의 방법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는데, 개의 십이지장 점막을 벗겨 다른 개의 체내에 주입하는 것이었어요. 실험 결과 후자의 경우에 그 췌액 분비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관찰함으로써, 개가 대량의 췌액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개의 신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스탈링은 분명히 밝혔어요. 그 후 생물학자들은 스탈링의 실험 분석결과를 지지했지만, 파블로프는 여전히 반대의견을 고집했어요. 그리고, 2년여 동안 반복적인 논증을 거친 후인 1902년에 드디어 스탈링과 베일리스(Bayliss, 1860년~1924년)가 세크레틴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성공한답니다. 그들은 이 물질을 포유 동물의 혈액에 투여했고, 그러자 동물이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음에도 대량의 췌액을 분비했어요. 그들은 이 실험을 통해 파블로프의 신경반사설을 뒤집은 것이었죠. 세크레틴의 발견으로 생명체가 만드는 물질 중에서 혈액에 투여하면 비교적 멀리 있는 기관이나 조직에 대한 조절 작용을 담당하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어요.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생물체 내의 통제신호가 모두 뉴런과 연관이 있다는 기존의 이론을 보기 좋게 깨뜨린, 그야말로 내분비학에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는 발견이었어요. 훗날 스탈링과 베일리스는 비단 세크레틴 뿐만 아니라 체내의 다른 많은 물질들도 저마다의 생리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1905년에는 이와 같이 지극히 적은 양으로 생리작용을 조절하여 생물체의 기관 반응을 활성화시키는 물질을 ‘호르몬’이라고 통칭해게 된답니다.

    세크레틴 발견 이후 과학계에는 호르몬을 찾는 붐이 일면서 각종 호르몬의 발견이 줄을 잇는데, 그 중 1920년 캐나다의 생리학자 밴팅(Banting, 1891년~1941년, 1923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과 매클라우드(Macleod, 1876년~1935년, 1923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는 함께 인슐린을 발견했고, 이를 추출해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23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답니다.

     

     

    VII-12.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원시 생명체: 바이러스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사람들은 각종 매스컴을 도배한 에이즈, B형 간염, 광우병 등을 떠올리며 두려워하죠. 바이러스는 줄곧 지구 상의 인간과 동물, 식물 등 생명체를 괴롭히며,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해 왔어요. 통계에 따르면, 대략적으로 70%의 인간 전염병이 바이러스에 의해 생겨났다고 해요. 그 중에서도 중세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흑사병’은 바이러스 대가족의 일원인 페스트 바이러스가 일으킨 전염병으로 유명하죠. 그리고 1918년에 전세계로 확산되어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는데 ‘타미플루’와 같은 약이 개발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백신 개발 등의 효과적인 대응 조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각종 전염병, 예를 들면 천연두, 척수회백질염(소아마비라고도 해요.), 흑사병 등은 일찍부터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인류가 이들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건 19세기에 들어서 였어요.

    프랑스 생물학자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하고 세균설을 정립한 후 흑사병, 천연두, 광견병 등의 질병이 생기는 원인을 성공적으로 설명해냈어요. 하지만 질병의 병원체를 직접 확인하는 것은 실패했죠. 광견병에 걸린 개의 타액을 다량 추출했지만, 당시의 현미경으로는 바이러스를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스퇴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세균보다 더 작은 병원균이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답니다. 실제로 세균보다 작은 병원균이 바로 바이러스예요. 이후 몇 년 동안 새로운 발견이 계속 이어졌는데, 그 중에는 바이러스 발견의 역사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바이러스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랍니다.

    1886년, 독일의 미생물학자 겸 화학자 메이어(Meyer, 1843년~1942년)는 모자이크병에 걸린 연초 잎에서 얻은 즙으로 건강한 연초에 모자이크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함으로써 이 바이러스에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하지만 그는 모자이크병을 일으키는 ‘균’이 이전의 세균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긴 했지만 그 특징을 자세히 분석하지는 못했어요.

    러시아의 미생물학자 이바노프스키(Ivanovsky, 1864년~1920년)는 1892년에 메이어의 실험을 재현한 후 보다 심층적인 결과를 얻었어요. 즉, 병에 걸린 연초 잎의 즙을 세균여과기로 걸러낸 후에도 여전히 건강한 연초에 모자이크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죠. 이것은 연초 모자이크병을 초래한 병원이 세균여과기에 의해서 걸러질 수 있는 세균의 크기보다 그 크기가 작기 때문인데, 이바노프스키는 세균이 만든 독소 때문에 모자이크병이 일어났다고 잘못 해석했어요.

    네델란드의 세균학자 베이제린크(Beijeringck, 1851년~1931년)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어요. 1898년에 그는 모자이크병에 걸린 연초의 즙을 한천 젤 표명에 데, 연초즙이 젤에 일정한 속도로 확산되는 것을 관찰했어요. 이와는 달리 세균은 동일한 상황에서 한천의 표면에 그대로 남아있었죠. 이러한 사실을 관찰함으로써 베이제린크는 담배 모자이크병을 유발하는 인자의 세 가지 특징, 즉, ㄱ. 담배 모자이크병을 유발하는 인자는 세균여과기를 통과할 수 있다, ㄴ. 감염된 세포 내에서만 번식한다, ㄷ. 체외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점을 도출해 냈어요. 이 세가지 특징은 확실히 세균과는 다른 점이랍니다. 이로써 베이제린크는 담배 모자이크병을 유발하는 인자가 세균이 아닌 새로운 물질임을 주장했고, 그것을 살아있는 감염성 병원체, 라틴어로 ‘바이러스’라고 명명했어요. 드디어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죠.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가 발견된 후 과학계는 각종 바이러스를 찾는 노력이 이어졌어요. 1898년에 독일의 세균학자 뢰플러(Loeffler, 1852년~1915년)와 프로쉬(Frosch, 1860년~1928년)가 구제역 바이러스(Foot-and-mouth disease virus)를 발견했으며, 이어 1911년에 미국의 미생물학자 루스(Rous, 1879년~1970년, 196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가 닭의 악성종양을 유발하는 자신의 이름을 딴 루스 육종 바이러스(Rous sarcoma virus)를, 1915년과 1917년에 트워트(Twort, 1877년~1950년)와 데렐(d’Herelle, 1873년~1949년)이 각각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1930년대까지 독감 바이러스, 척수회백질염 바이러스, 각종 뇌염 바이러스, 광견병 바이러스, 토끼의 점액종 바이러스, 감자 모자이크병 바이러스 등을 포함해 백 여 종에 가까운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답니다.

    한편, ‘전자현미경’의 출현으로 바이러스의 모습과 구조 메커니즘, 질병 유발 원인을 보다 자세히 알게 되면서 분자바이러스학과 그와 관련된 분자생물학이 정립되었어요. 또한 대량의 예방 백신을 연구 제작함으로써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을 예방하면서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한편 바이러스로 인한 농업 및 목축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됐죠. 이 외에도 인류는 나름의 용도를 가진 바이러스를 발견해 모든 바이러스가 백해무익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박테리오파지는 일부 질병을 방지하는 특효약으로써 화상 환자의 환부에 녹농균과 박테리오파지를 희석해 바르면 효과적으로 화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나아가 바이러스 게놈 복제, 유전자 발현 조정 원리, 바이러스와 숙주세포의 상호작용 규칙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바이러스 감염과 질병 유발 분자 메커니즘이 밝혀졌고, 분자바이러스학 분야의 기술 혁신과 발전이 있었어요. 이러한 과학적 지식은 앞으로 인류가 바이러스성 질병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임에 틀림없답니다.

     

     

    VII-13. 남녀 성별의 수수께끼를 밝히다: 성 결정과 유전자

     

    유전학의 창시자 멘델이 19세기 중엽에 발견한 유전법칙은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과학계의 인정을 받았는데, 20세기 첫 해에 세 명의 생물학자가 각자 독립적으로 똑 같은 결론을 도출해냈던 것이죠. 그들이 내놓은 결론은 멘델의 발견과 같았고, 이로써 멘델의 유전법칙은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909년에 ‘유전인자(gene)’라는 이름을 붙여졌는데, 그리스어로 ‘탄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요.

    현미경으로 동물과 식물의 세포를 관찰해 보면, 막으로 둘러싸인 둥근 핵이 보이고,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 밝은 색의 실처럼 보이는 염색체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사람의 경우, 정상적인 세포의 핵은 23개의 염색체 쌍을 가지고 있는데, 난자와 정자에는 각각 23개의 염색체가 있고, 따라서 이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형성되는 사람의 세포는 23쌍의 염색체를 갖게 되는 것이죠. 이들 23쌍의 염색체들은 그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르지만, 쌍을 이루는 두 염색체들은, 크기와 모양 등이 서로 대응되지 않는 X 염색체와 Y염색체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정확히 같게 보인답니다.

    1667년도까지만 해도, 과학 지식의 부재로 인해서, 성과 생식의 그 특별한 관계를 알 수 없었어요. 최초의 현미경 학자인 레이우엔훅이 1667년에 정액 속에 정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그는 이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미세 동물이 난자로 들어가서 수정될 것이라고 가정하였어요. 그렇지만 그 후 200년 가까이 이 가설이 증명되지 못 했죠. 멘델 역시 ‘유전인자’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했어요. 이는 곧 후세대 과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뜻인데,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완전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만큼 어려운 문제랍니다. 과학은 퍼즐 맞추기로 비유할 수 있어요. 이 퍼즐은 과학자 개개인이 아무리 위대하다 하더라도 일부만 겨우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까다롭죠. 물론 위대한 과학자는 퍼즐의 많은 부분을 맞추는 방법을 찾아내 후대 사람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많은 과학자가 함께 노력해야 한 폭의 완전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법이죠.

    1854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개구리와 성게 수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현미경 학자들에 의해서 암수 배우자의 융합 과정이 그림 등으로 상세하게 기록•서술됨으로써 성(sex)과 생식의 관련성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1879년에 독일의 생물학자들은 세포 속의 ‘염색체’를 발견했는데, 알칼리성 아닐린 염료를 이용하면 투명한 세포핵의 미립물질을 염색시킬 수 있었죠. 이로써 그들은 세포 분열의 전 과정을 관찰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좀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당시엔 멘델의 유전이론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들 생물학자들은 ‘세포의 분열과정은 멘델의 유전이론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었을테고, 그러면 염색체와 ‘유전인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초기의 답을 보다 20세기가 오기 전에 알 수 있었지도 모르죠.

    어쨌든 이 둘의 관계에 가장 먼저 눈을 돌린 사람은 미국의 생물학자 서턴(Sutton, 1877년~1916년)이었어요. 그는 1903년에 세포의 염색체와 멘델의 유전인자 사이에 평행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그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메뚜기(Brachytola magna) 정소의 시원세포를 이용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메뚜기 정소의 시원세포들이 감수분열을 거쳐 정자로 변환됨을 관찰하였죠. 그는 메뚜기 정소에 있는 시원세포가 감수분열 전에는 총 24개의 염색체를 가지며, 이 중 22개는 서로 그 크기와 모양이 일치되는 11쌍으로 구성된 상염색체들임을, 그렇지만, 나머지 2개의 염색체는 서로 크기와 모양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는 그 두 염색체를 성염색체라고 명명하면서, 둘 중 큰 염색체를 X 염색체, 작은 염색체를 Y 염색체라고 불렀어요.

    그 실험에서 시원세포의 감수분열로 생성된 정자들은 두 종류가 관찰되었는데, 생성된 정자의 절반은 11개 상염색체와 X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11개 상염색체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어요. 대조적으로 암컷 메뚜기에서 생성된 모든 난자는, 11개 상염색체와 X 염색체만을 가지고 있었죠. 그는 계속된 관찰을 통해서, X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X 염색체를 가진 난자와 수정되면 XX 염색체를 가진 암컷 메뚜기로, Y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X 염색체를 가진 난자와 수정되면 XY 염색체를 가진 수컷 메뚜기로 성장함으로 관찰하게 되었고, 따라서 서턴은 X 염색체와 Y 염색체가 성을 결정한다고 결론내렸답니다.

    1902년과 1903년에 서턴은 자신의 연구결과와 함께, 독일의 보베리(Boveri, 1862년~1915년), 뉴욕의 윌슨(Wilson, 1856년~1939년), 그리고 여러 연구자들이 제시한 이론적 생각과 실험적 결과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최초로 염색체설을 제안했어요. 서턴은 1902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에서, “부계와 모계 염색체들의 쌍 형성과 감수분열 동안 이들이 분리되는 것은 … 멘델의 유전법칙의 물리적 기초를 구성할 것”이라고 제안하였고, 1903년에는 염색체가 멘델 유전 단위를 운반한다고 제안하였죠. 이때부터 세포학과 유전학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이는 유전학 연구에 지름길이 되어 주었어요.

    미국 학자 모건(Morgan, 1866년~1945년, 1933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은 이 지름길의 최초 수혜자였어요. 그는 초파리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어요. 초파리의 몸은 일반적으로 작고 길이가 3 센티미터 정도로 황갈색 몸에 녹색 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모건은 자세한 관찰 결과로 초파리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죠. 이런 특징은 다른 모든 생물의 성질처럼 유전되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초파리는 기르기도 쉽고 한 번에 200 마리가 태어난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초파리가 태어난 지 2주가 지나면 생식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연구 주기를 크게 단축시킬 수 있어요. 멘델이 완두를 이용하여 손자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성질과 형상 차이를 밝히는데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은 시간적인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죠. 물론 연구 주기를 단축한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연구의 지름길을 찾았다는 것이에요. 이는 초파리의 세포 내 염색체 수가 완두에 비해 훨씬 적고, 그 중 일부는 일반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모건은 초파리 실험을 통해 유전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이해함으로써 멘델 법칙의 확인과 함께 멘델 법칙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새로운 유전법칙인 ‘성별 유전법칙’을 발견했어요. 그는 생물의 성별 유전은 성염색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생물의 성별 유전인자는 ‘성염색체’ 상에 있고, 바로 이 성염색체가 성별 유전인자의 물질적 책임자라는 것이었죠. 이 발견으로 생식과 성별 결정의 비밀도 그 베일을 벗게 된답니다. 즉, 여성의 성염색체는 XX로 구성되어 있어 생식을 위해 제공된 난자는 X염색체 하나만 가질 수 있는 반면에, 남성의 성염색체는 XY로 구성되어 있고 생식을 위해 제공된 정자는 X 염색체일 수도 있고 Y염색체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X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난자와 X염색체의 정자가 결합하면 성별은 XX인 여성이 되고 X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난자와 Y 염색체의 정자가 결합하면 성별은 XY인 남자가 된다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모건은 자신이 발견한 생명체의 실제 유전방식이 멘델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고, 몇 년 동안의 실행과 탐구를 거쳐 모건은 마침내 중요한 결론에 도달해요. 즉, 몇 가지 유전자의 염색체 상의 위치를 실험적으로 추정함으로써 초파리가 가지는 4 쌍 염색체 상에 각 유전자가 물리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유전자의 위치도를 그릴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이렇게 ‘유전자설’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XY 염색체를 갖는 사람의 수정란은 자라서 남성이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성별을 결정하는 특별한 단백질과 관련된 유전정보가 Y 염색체 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이와 같은 특별한 단백질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인데, 미국의 이치월드(Eichwald, 1913년~2007년)는 마우스를 이용한 실험에서 남성만이 특정 항원 단백질을 갖고 있음을 보였어요. 1960년에는 영국의 빌링햄(Billingham, 1921년~2002년)가 좀더 정밀한 실험을 통해서 이 단백질을 조직적합성-Y 항원(histocompatibility-Y antigen 또는 H-Y 항원)이라고 명명했고, 그후 독일의 울프(Wolf, 1933년~2017년)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포유동물들에 있어서 수컷(남성)은 이 H-Y 항원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어요. 즉, Y 염색체를 갖고 있는 수정란이 세포 분열을 통해서 태아가 되는 과정 중에서, 아직 미분화된 상태일 때 생식기관의 세포막에 이 H-Y 항원이 생성되어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죠. 비록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져 있진 않지만, 이 H-Y 항원이 미분화된 생식기관을 성숙한 정소(testis)로 발육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확실해요. 한편 일단 정소의 형성이 시작되면 사람의 성별을 결정짓는 Y 염색체의 임무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에 나타나는 생식기관의 발육이나 남성적인 체격·외모와 같은 수컷(남성)으로서의 성징 발달은 정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에 의해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암컷(여성)의 경우에는, 그 성 결정이 H-Y 항원과 같은 특별한 물질의 도움에 의한 것이 아니고, 두 개의 X 염색체가 함께 존재함으로써 그 염색체들에 있는 유전정보의 조절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여성은 Y 염색체가 없으므로 H-Y 항원이 당연히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대응하는 수용체 또한 존재하지 않죠. 따라서 두 개의 X 염색체 내에 있는 유전정보의 조절에 의해 태아의 생식기관이 생성되고, 그 이후에는 미분화된 생식선이 정소 대신 난소(ovary)로 분화된다는 것이에요. 사람의 경우, 남성은 사춘기가 될 때까지 정자의 형성이 억제되는 반면 여성은 태아 때부터 수백만 개의 소난포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소난포들이 자라서 성숙한 난자가 된답니다.

    이와 같이, 성별의 수수께끼도 마침내 풀리게 되었답니다. 이 때부터 유전학은 공상의 시대를 끝내고 위대한 발견이 계속 이어지면서 가장 활발한 연구 분야 중 하나가 됐어요.

     

     

    VII-14. 세균성 감염을 치료한 최초의 의약품: 페니실린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과학의 기여 측면에서 보면 파스퇴르만큼 중요한 학자는 없어요. 그의 학설이 있었기에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인간을 공격할 있는 수많은 미생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의학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죠. 인류가 질병에 맞서게 된 것도 그의 백신의 공이 크답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예전보다 오래 살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파스퇴르의 덕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많은 질병이 백신을 맞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게다가 때로는 백신을 맞았다가 오히려 병에 걸리기도 하고,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에이즈, 독감, 패혈증 등과 같은 질병들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어요.

    인류가 최초로 패혈증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한 번 살펴보면, 20세기 초에 사람들은 패혈증이 병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이 일으킨 감염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패혈증은 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정도에도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수술 과정에서도 감염될 수 있어요. 파스퇴르나 코흐의 세균에 대한 연구 이래, 의사들은 세균을 죽이는 화학 약품을 애타게 찾고 있었죠. 예를 들면, ‘화학 요법’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독일의 세균학자 애를리히(Ehrlich, 1854년~1915년, 1908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는, 1910년에 매독균을 죽이는 살바르산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렇지만 다양한 질병을 광범위하게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약품도 발견되었을까요?

    최초의 감염증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치료 방법은 우연한 계기에 발견됐어요.)에 대해서는 파스퇴르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말의 가장 좋은 예가 플레밍(Fleming, 1881년~1955년, 194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의 페니실린 발견이라고 할 수 있어요.

    페니실린의 발견에 앞서 플레밍은 콧물에 세균을 배양했을 때 콧물에 있는 물질에 의해서 세균이 분해되는 현상을 1921년에 발견했어요. 그는 그것을 ‘라이소자임’(lysozyme)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당시는 기술적 한계로 그것을 정제하여 임상치료에 사용할 수 없었고, 더욱이 병균에 대해서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플레밍은 병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을 계속 배양하면서 그것을 죽이는 방법을 마침내 찾았어요. 7년이 지난 1928년 여름, 그는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깜박하고 포도상구균 용기의 뚜껑을 덮지 않았는데, 다음날 뚜껑을 덮지 않은 포도상구균 배양기에 푸른곰팡이가 생긴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데, 이 곰팡이와 배양기 내 포도상구균이 접촉한 부분에 투명한 테두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 안쪽에 있는 포도상구균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당시 그는 이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에 대해 어떻게 억제 작용을 했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이 푸른곰팡이를 추출한 후 포도상구균이 가득한 용기에 담았고. 그 후 배양기 속에 있던 포도상구균이 모두 죽는 것을 관찰했어요. 플레밍은 당시 이 푸른곰팡이 또는 푸른곰팡이가 만들어내는 물질을 사용하면 병원균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정밀한 실험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양의 푸른곰팡이를 배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플레밍은 그 후 10여 년 동안 연구를 했지만, 순도 높은 푸른곰팡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죠. 그의 위대한 발견이 사회적으로 또는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는데 실패한 것이었어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서 그는 자신감도 잃었어요. 1939년에 그는 푸른곰팡이 균종과 자신의 관련 연구 자료를 호주 출신인 영국 병리학자 플로리(Florey, 1898년~1968년, 194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와 나치 독일에서 영국으로 도망쳐 온 생물학자 체인(Chain, 1906년~1979년, 194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에게 제공했어요. 플로리와 체인은 당시 막 발견된 ‘설파제’보다도 더 강력한 항균제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플로리와 체인은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1년여 동안 집중적으로 실험한 결과 냉동건조법을 이용해서 푸른곰팡이 결정체를 추출함으로써 순도가 높은 푸른곰팡이를 얻었어요. 그리고, 일련의 임상 실험을 거쳐서 페니실린의 수용액을 갈색의 분말로 얻는 데 성공하며, 1944년에 푸른곰팡이를 사용해서 만든 약물 ‘페니실린’이 마침내 미국에 등장했죠. 당시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이었는데, 패혈증 환자, 중상자, 폐결핵 환자를 비롯한 세균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이 페니실린 분말이 사용되어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어요. 즉, 페니실린이 패혈증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폐렴구균 등의 병균의 번식을 억제할 수 있음이, 그리고 환자의 건강한 조직을 파괴하지는 않음이 증명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1944년에 미국의 미생물학자 왁스먼(Waxman, 1888년~1973년, 195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에 의해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이 발견되는 등, 다른 종류의 항생 물질이 속속 발견되었어요.

    페니실린은 세상에 등장한 첫 해부터 부상당한 병사 수만 명의 생명을 살렸어요. 노르망디 상류 작전(Battle of Normandy)에서 한 육군 소장은 ‘페니실린은 전쟁 부상을 치료하는 이정표’라며 진심으로 감탄했다고 해요. 그렇지만, 페니실린이 가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답니다. 페니실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결핵처럼 그것을 사용해도 아무런 효과도 없는 질병도 있어요. 이 때문에 학자들은 새로운 약물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고, 페니실린의 효과를 보이지 않는 병원균에 대항할 수 있는 약물들이 잇달아 연구•개발되었어요. 이 약물들은 ‘항생제’(또는 항생물질)로 통칭한답니다.

     

     

    VII-15. 생명과학의 획기적인 발전: DNA의 이중 나선 구조의 벌견

     

    VII-13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모건은 오랜 실험과 탐색을 거친 끝에 염색체가 바로 유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그리고 염색체 내에서의 일부 결함, 중복, 전위, 이동 등 기형적인 변이를 탐색함으로써 생물 변이의 미스터리를 풀었죠. 그런데, 염색체는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그리고 염색체의 유전 정보는 어떻게 전달될까요? 이는 과학계가 풀어야 할 문제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생명과 진리의 신비함을 벗기는 즐거움이기도 했어요.

    최초로 염색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확인한 사람은 스위스의 의사이자 생물학자인 미셔(Miescher, 1844년~1895년)였어요. 그는 순수 세포핵을 제조•추출하는 과정에서 처리 후의 세포핵에 인 함유량이 높고 황 함유량이 낮은 유기산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유기산의 용해 정도와 펩신에 견디는 정도는 유기산이 새로운 세포 성분이라는 것을 암시했어요. 그는 이 물질을 ‘핵산’이라고 이름붙였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셔의 불행은 멘델의 그것과 닮아 있었어요. 그가 ‘핵산’을 분리해서 얻었지만 그후 오랫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죠. 1930년대에 생물화학자들이 핵산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면서 핵산의 분자구조가 밝혀졌어요. 핵산이 당, 인산, 유기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한편, 세포 내에는 두 종류의 핵산이 있다는 것도 밝혀냈어요. 바로 리보핵산(RNA)과 디옥시리보핵산(DNA)이죠.

    DNA가 바로 유전자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미국의 생물학자 에이버리(Avery, 1877년~1955년)였다. 1944년에 그는 ‘폐렴구균 전환 실험’을 행했다는데, 표면이 반질한 폐렴구균의 DNA를 분리해 표면이 거친 폐렴구균과 섞어 넣었는데, 그 결과 표면이 거칠었던 폐렴구균의 표면이 반질한 형태로 바뀐 것을 발견했어요. 이는 DNA에 모든 유전 정보가 있으며 그 유전정보로 인해서 표면이 거칠었던 폐렴구균이 ‘형질변환’의 과정을 거쳐 표면이 반질한 형태로 바뀐 것이고, 염색체를 구성하는 물질 중에서 DNA와 함께 있는 단백질에는 이런 기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에요. 에이버리의 발견으로 당시까지만해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던 DNA가 분자유전학에서 중점 연구 주제가 되었어요. 즉, DNA 분자 구조와 그 유전 메커니즘을 찾는 것이 과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주요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죠.

    V-2-5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1951년에 윌킨스와 프랭크린이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촬영했어요. 그리고 이들 DNA 결정체 X-선 회절 사진을 보고 왓슨과 크릭은 새로운 영감을 얻었죠. 그들은 DNA가 나선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선의 매개변수를 분석했어요. 이후 오랫동안 왓슨과 크릭은 사무실에서 철판과 철사 등을 이용해 여러 형태의 모형을 만들었고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겪었어요. 또한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구하고, 그들의 의견에 따라 어렵게 만든 모형을 부수고 새롭게 만들었죠. 그리고, 1953년 2월 28일에 DNA 이중 나선 구조의 분자 모형이 마침내 탄생한답니다. 같은 해 4월, 그들은 ‘DNA의 X- 선 회선도’나 화학 성질 등 여러 자료의 내용에 부합하는 ‘유전자’의 분자 모형을 논문으로 발표했어요. 이들의 모형은 DNA 분자 두 개가 뒤얽혀 있는 사슬 모형이었어요. 안쪽 방향으로 뻗어 나온 ‘평면’들이 모양에 맞게 서로 연결되어 이루어진 나선형 계단 형태였죠.

    이와 같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밝혀지고 얼마 후, 크릭과 왓슨은 DNA의 복제 메커니즘을 제시했어요. 즉, DNA가 복제될 때, DNA의 이중 나선이 분리되고 그 두 개의 사슬은 자신 각각을 ‘원본’으로 하여 그것과 짝을 이루는 사슬을 합성함으로써 새로운 두 개의 이중 나선 형태의 DNA를 만든다는 메커니즘이었어요. 그리하여, 세포 안에 두 개의 DNA 물질이 존재하게 되고, 그리고 그 후, 두 개의 세포로 나뉘어지게 되고, 또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생명체는 한 세대, 한 세대 씩 안정적으로 유전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한편으로 DNA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가끔 오차가 발생하는데 이때 종의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크릭과 왓슨의 발견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어떤 사람은 이들이 ‘생명의 신비’를 풀었다고 극찬하기도 했고, ‘금세기 생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또는 ‘생물학의 결정적인 발견’이라고 칭송받기도 했어요. DNA의 이중 나선 구조는 발표 후 곧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아인슈타인 얼굴과 함께 20세기 과학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으며, ‘분자생물학’ 탄생의 상징이자 오늘날 ‘생물공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답니다.

     

     

    VII-16. 전형적인 양날의 칼: 클론기술

     

    클론(clone)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무성생식을 의미해요. 즉, 단일 세포의 증식에 의하여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군 또는 개체군을 만드는 과정을 뜻하죠. 한편,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클론은 과학자들이 생명체의 무성생식을 이용해서 인공적으로 유전자 조작하는 과정을 포함하며, 이와 관련된 생물학적 기술을 클론 기술 또는 복제 기술이라고 부른답니다.

    자연계에는 선천적으로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멋진 그늘을 만드는 버드나무라든지 야채 중 하나인 감자라든지, 또 사랑을 상징하는 향기로운 장미 등과 같은 꺾꽂이 식물은 무성생식을 해요. 또한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거머리나 묵묵히 땅을 가는 지렁이와 같은 여러 하등 동물도 무성생식을 한답니다. 지렁이를 칼로 자르면 잘린 몸통이 각각이 따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의 몸에서 잘려나간 여러 부분들이 각각 독립적인 개체를 형성하는 것이죠.

    이와 반대로 많은 고등 동물들의경우에는, 후손을 만들려면 양성교배가 이루어져야 해요. 고등 동물은 일반적으로 자연적인 무성생식으로는 후대를 만들 수 없어요. 아이가 태어났는데 생물학적 아버지는 없이 어머니만 있고, 그 아이의 유전자가 어머니의 유전자와 완전히 동일한 경우를 일반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경우를 이론적으로 살펴보면 이 아이가 그 어머니의 자식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자매인지 또는 어머니의 분신인지 분간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상상도 할 수도 없었던 일이 오늘날에는 현실이 되었어요. 클론 기술은 1930년대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다른 어떤 과학보다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특히 ‘복제양 돌리’가 출현한 이후 오늘날까지 가히 놀라울 만한 발전을 이룩했어요.

    1950년대 미국의 과학자들은 개구리 등의 양서류와 어류를 대상으로 세포 이식에 성공함으로써 최초로 동물의 무성 생식을 가능케 했어요. 그리고 영국의 생물학자 거든(Gurdon, 1933년~ , 201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이 1962년에 핵이 제거된 개구리 난자에 올팽이의 소장 상피에서 분화된 세포의 핵을 이식시킴으로써 몇몇의 올챙이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1986년에는 영국의 과학자 월머트(Walmut, 1944년~ )가 배아세포를 이용한 세포이식법으로 양을 처음으로 복제해냈어요. 이 복제양 돌리는 무성생식을 통해 탄생한 최초의 포유동물이었죠. 그 후 세계 각국에서는 소, 양, 쥐, 토끼, 원숭이 등의 복제동물이 잇달아 탄생했어요.

    복제양 돌리의 탄생과 같이 세포 이식에 성공했다는 것은 고도로 ‘분화’된(differentiated) 세포 역시 배아세포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음을 뜻하는데, 이는 포유동물의 일반 세포를 이용해 기존의 동물과 완전히 똑 같은 생명체를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였고, 오래 전부터 내려온 불변의 자연법칙을 완전히 깨뜨린 결과이기도 했어요. 때문에 이러한 클론 기술은 생명공학기술 발전에 기념비적인 사건이자 인류역사상의 중대 발견으로 생물학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었고, 2012년에는 일본의 야마나카(Yamanaka, 1962년~ , 201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는 성숙하고 특화된 세포들이 인체의 세포 조직에서 자라날 수 있는 미성숙 세포로 재프로그램할 수 있음을 증명하여 세포생물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답니다.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클론 기술은 잠재적인 경제 가치가 실로 막대해 ‘아무리 캐도 끝이 없는 금광’이라 불려요. 교배를 통한 육종, 멸종위기에 놓인 종 구제 또는 멸종된 종의 복원, 그리고 의학에 이르기까지 클론 기술는 많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답니다.

    핵에너지와 마찬가지로, 클론 기술 역시 인류에게 ‘양날의 검’과 같아요. 인간을 부유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지만,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죠. 생물의 다양성은 자연 진화에 의한 결과로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해요. 그리고 유성 생식은 생물이 다양하게 형성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기초조건이죠. 그렇지만 ‘복제 동물’의 출현으로 오랜 세월을 이어온 자연법칙이 깨진다면 생물의 종이 감소하고 개체의 생존 능력 역시 저하되게 될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점은 클론 기술이 인간 자체에 이용된다면 사회 전체의 윤리•도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자식인지, 동생인지, 아니면 또 다른 자기 자신인지도 모르는 인간의 출현은 그 누구에게든 상상하기 힘든 문제들을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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